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1959년 문단 등단 후 농촌 농민과 도시 노동자 등 우리 사회 서민 민중의 삶과 정서를 사실적 시로 승화시켜 큰 공감과 함께 반향을 일으킨 이성부 시인이 1977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그의 세 번째 시집 <백제행>을 출간했다.
‘창비시선’ 12번째로 펴낸 시집에는 시인이 후기에서 “어렵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승리가, 반드시 고통 속에서 쟁취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그러기에 나는 나와 내 이웃들의 고통의 현장에서 한 발자국도 비켜설 수 없다. 이 고통의 편린들, 이 뼈아픈 삶의 정체를 밝혀보는 일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적 목표가 된다.”고 밝혔듯, 당대 도농의 소외되고 아픈 소시민 노동자 민중의 고된 정서를 노래한 가편의 시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1970년 11월 13일 서슬 퍼렇게 노동을 탄압하고 억압한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에 분신으로 맞선 전태일 열사를 피 토하듯 노래한 시 ‘전태일 군’ 등, 수록된 시편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자각하게 한다.
“불에 몸을 맡겨/지금 시커멓게 누워버린 청년은/결코 죽음으로/쫓겨간 것은 아니다.//잿더미 위에/그는 하나로 죽어 있었지만/어두움의 입구에, 깊고 깊은 파멸의/처음 쪽에, 그는 짐승처럼 그슬려 누워 있었지만/그의 입은 뭉개져서 말할 수 없었지만/그는 끝끝내 타버린 눈으로 볼 수도 없었지만/그때 다른 곳에서는/단 한 사람의 자유의 짓밟힘도 세계를 아프게 만드는,/더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의 뭉친 울림이/하나가 되어 벌판을 자꾸 흔들고만 있었다.//굳게굳게 들려오는 큰 발자국 소리,/세계의 생각을 뭉쳐오는 소리,/사람들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아무도 아무도 지켜보지 않았지만//불에 몸을 맡겨/지금 시커멓게 누워있는 청년은/죽음을 보듬고도/결코 죽음으로/쫓겨간 것은 아니다.”(시 ‘전태일 군’)
시인 김현승은 시집에 대해 뒤표지글에서 “이성부의 시인으로서 인생에 가지는 이념은, 서민풍의 강인한 기질과 왕성한 생명력으로 나타나,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활기를 느끼게 한다.”고 밝혔으며, 소설가 이문구는 “백제유민의 장한을 남도가락으로 부르짖으며 오늘도 이 야생마는 서민전선을 달리고 있다”고 논했으며, 시인 신경림은 “관념을 관념적이 아닌 것으로 시 속에 용해하는 이 시인의 시적 능력 또한 높이 평가되어 좋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평론가 염무웅은 발문에서 “이성부는 이 시대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소외의 질곡과 고통을 정직하게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연대성의 확인을 통해 소외의 극복 가능성에 낙관을 보낸다.”며, “나는 이성부의 시가 이처럼 고통에도 불구하고 낙관을, 절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노래하는 데에 튼튼환 신뢰를 보낸다.”고 밝혔다.
1942년 광주에서 출생한 시인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5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바람’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1962년 〈현대문학〉에 시 ‘열차’ 등으로 추천 완료되었으며,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됐다. 시집 <이성부 시집>, <우리들의 양식>, <백제행>, <전야>, <빈산 뒤에 두고>, <산에 내 몸을 비벼>, <깨끗한 나라>, <야간산행>, <지리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도둑산길> 등과, 산문집 〈산길〉을 펴냈다. 1969년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해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 편집국 부국장을 역임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편운문학상, 가천환경문학상, 한림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2년 향년 70세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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